순진한 엄마 by 루얼


 엄마와 난 코드가 맞지 않다. 엄마는 극 보수 성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냐 하면, 내 방에 걸린 남자사람친구들과의 사진을 보며 "이런 거 방에 있으면 다른 사람이 의심한데이" 고 걱정하는 사람이다. 이사를 하고 친구들 불러 집들이 하려 할 때도 "주변에 남자친구들 많이 있으면 나중에 결혼할 사람이 싫어한데이. 너무 가까이 놀지 마라." 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남자친구와 사귈 때도 "가는 친구데이. 절대로 애인 아니데이." 라고 말하고 "밖에 있을 때 가랑 막 손잡고 그러면 안 된다." 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내게 교직과 전문직을 권하는 이유는 "시집 잘 가기 위해서" 이다. 물론, 나는 엄마가 이런 이야기를 할 때마다 "어, 그래." 또는 "손은 벌써 진작에 잡고 다니지." 또는 "교사 안 하고 시집 가지 말지 뭐." 라고 적당히 대꾸해버린다. 왜냐면, 굳이 말을 길게 섞어 보았자 엄마의 생각이 바뀌지 않을 거란 걸 잘 알고 또 나의 생각 또한 바뀌지 않은 거란 걸 잘 알아서이다.

 그런 엄마는 대한민국 보수 정치의 메카 TK 출신답게 정치 성향 또한 한나라당, 아니 새누리당의 열성 팬이다. 그러니 내게 첫 투표권이 생겼을 때부터 '한나라당 찍어야 된데이." 라고 전화로 얘기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어떤 정치적 이슈가 생기면 심심치 않게 나에게 그 이슈에 대해 열성을 토한다. "민주당 그놈아들이 약았다니까" 또는 "맹박이가 일은 잘 하는데 빙시같이 그걸 제대로 알리지를 못한다 아이가. 카니까 맨날 당하고 있지" 같은 그런 이야기들을. 물론, 나는 엄마가 이런 이야기를 할 때마다 "어, 그래" 또는 "욕 먹을 짓을 했겠지." 라고 적당히 대꾸해버린다. 정치는 내 주요 관심사가 아닐 뿐더러 나는 그쪽 지지자가 아니니까 말이다.

 이번 총선에서도 엄마는 개표 방송이 시작된 이후 꾸준히 나에게 문자로 본인의 생각을 실시간으로 전했다. "출구조사 새누리 민주당이 팽팽하다." 라던가 "우리 동네 민주당이랑 새누리 경합일세." 라던가 "서울 경기는 좀 그런데 충청 강원이 새누리가 강세다 박근혜 대세론이 있는 거 같애" 라던가 "새누리 예상 의석이 자꾸 늘어나네. 서울 경기에서 져서 좀 찜찜함" 등등. 마지막엔 나에게 전화까지 해서 이번 총선의 판세를 열심히 분석해주고 있었다. 동쪽은 전부 빨간색이라느니, 수도권은 내 줬지만 그래도 꽤 선전했다느니 하면서 말이다. 일단 새누리당이 과반석을 차지해서 그런지 목소리가 조금 들떠 있었다. "새누리당이 이겨서 기분 좋나?" 라고 내가 콕 집어 물으니 "그래, 기분 좋다." 라고 답했다.

 자기가 지지하는 정당이 총선 이겼다고 그렇게 기뻐하는 목소리라니... 비록 내가 엄마의 지지에 동조를 하고 말고를 떠나 그렇게 선거 결과에 매달리고 좋아하는 모습이 참 순진해 보였다. 나는 내가 찍은 후보가 당선이 유력해도, 혹은 떨어질 듯 해도 무덤덤하기 그지 없는데 말이다. 어느 정당이든, 어느 정치인이든 나의 희망에 완전히 부합하는 정책을 들고 나와 실현시켜줄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엄마는 지지 정당에 힘을 실어주고 싶어하고 반대 세력의 행보에 관심을 기울이고 그 정당의 승리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나와 달리 엄마는, 정치를 믿는 것이다.




덧글

  • 레비 2012/04/12 03:41 # 답글

    TK가 뭔지 한참 생각했어요..ㅎㅎ 확실히 아직 부모님 세대는 그런면이 남아있죠 :) 저희 아버지도 그러셔서 전 그냥 이상하게 생각치는 않아요 ㅎㅎ 그런데 저는 루얼님 어머님의 생각에 많은 부분 이해가 되고 공감이 가기도하네요 ㅎㅎ 전 사람을 애초에 믿지않아서 후보자를 보지않고 그냥 정당만 보고 투표하는 편이거든요.
  • 루얼 2012/04/12 13:46 #

    음, 저랑은 반대시군요ㅎ 저는 우리나라 정당이, 특히 제 1, 2당이 '어떤 일치된 신념을 공유하는 집단' 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정당을 믿지 않거든요.

    어쨌든, 50대 엄마의 반응을 보고 놀라웠던 건, 투표에 참여하는 20대 못지않게 (참여하지 않은 사람들은 아예 논외로..) 적극적으로 정치를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었어요. 그런 모습이 20대보다 더 순수해 보였다는 거에요.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