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뢰스투르를 떠나는 날, 날씨는 여전히 환상적이었다. 식당에서 아침을 먹고 10시에 게스트하우스에서 나왔다. 리셉션에 아무도 안 계시길래 그냥 열쇠를 두고 떠나려는데 식당 아주머니께서 나와 "Leaving?" 이라고 하시며 배웅을 해주셨다. 숙소 예약을 다시 해야 해서 인포에이션 센터에 가 돈을 내고 인터넷을 썼다. 그런데 버스 정류장에 가니 웬걸, 와이파이가 잡힌다. 돈 아까웠다. 와이파이를 연결하니 7월 부다페스트에서 만났던 유성일 군에게서 메일이 왔다는 알림이 떴다. 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그때 같이 찍은 사진을 보내왔다.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동생에게 아이스크림을 사달라고 했다.

그저께 타고 왔던 것과 같은 12번 버스가 왔다. 같은 기사에 같은 조수였다. 이번엔 다행히도 자리가 있어서 제대로 앉을 수 있었다. 버스는 3시 45분에 Jökusárlón요쿨사우르론에 도착했다. 사실 ö는 'ㅗ' 발음이 아닌 'ㅗ' 와 'ㅔ'의 중간쯤 되는 발음이지만 표기하기 힘들어서 그냥 요쿨사우르론이라 적는다. 12번 버스는 요쿨사우르론에서 45분간 정차를 한다. 여름에만 운영하는 보트투어를 하기 위해 잽싸게 달려갔다. 노란 조끼를 입은 사람이 보트투어 예약을 받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서 5시 10분에나 탈 수 있다고 했다. 결국 보트투어는 또다시 다음을 기약할 수 밖에 없었다.



우리는 45분 동안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처음 빙하 라군lagoon을 본 동생은 꽤 신기해했다. 겨울에는 물 위로 빙하가빽빽히 떠 있었는데 여름이 되어 좀 녹았는지 빙하의 수가 줄어들었다. 그럴리 없겠지만 왠지 겨울에 봤던 빙하가 군데군데 남아있는 것 같았다. 다행인 것은 날씨가 아주 화창해서 사진을 찍기 좋았다. 겨울에 왔을 땐 비바람이 몰아쳤더랬지.

요쿨사우르론을 출발한 버스는 5시 50분에 Höfn호픈에 도착했다. 12번 버스의 종착지이고, 그날은 더이상 갈 수가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룻밤을 머물러야 하는 곳이다. 호픈 숙소는 버스 정류장 근처의 캠핑장이었다. 텐트가 없는 사람을 위한 벙크베드가 딸린 캐빈이 있다. 작은 식탁와 의자 두 개, 토스트기와 전기포트를 갖추고 있다. 화장실은 캐빈 외부의 공용 시설을 이용해야 한다는 점이 좀 불편하다. 그리고 샤워를 할 때는 돈을 내야 한다. 3분동안 물이 나오는데 50크로나였던가. 우리가 머무는 캐빈에는 자전거로 여행을 하는 스페인 남자 두 명이 일층침대를 맡아놓고 있었다.


딱히 호픈에서는 할 일이 없어서 일단 동네 한 바퀴를 돌았다. 바닷가를 따라 주욱 돌고 난 뒤 숙소로 돌아오는데 낯 익은 얼굴이 보였다. 그쪽도 우리를 알아보았다. 뉴질랜드의 닉이었다! 동생과 코펜하겐에서 아이슬란드로 들어와 레이캬비크에서 하루 머물렀을때 만났던 사람이 닉이다. 닉은 로비에서 노트북을 쓰고 있던 나에게 메모리 카드 사진을 옮겨야 하는데 잠시 노트북을 빌릴 수 있냐고 부탁했고 그러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잠깐 했더랬다. 닉은 레이캬비크에서 만났을 당시 렌트카로 막 여행을 시작하려던 참이었고 우리와는 반대 방향으로 다닐거라서, 이렇게 다시 만나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게다가 그도 호픈 캠핑장 바로 옆 캐빈에서 머물고 있다는 게 아닌가. 참 세상은 좁다, 좁아.
닉이 자기 캐빈으로 초대를 해서, 엉겹결에 저녁도 같이 먹었다. 빵과 샐러드 드레싱밖에 없는 우리는 같이 먹기가 조금 민망하긴 했지만... 닉이 하도 괜찮다고, 자기네들도 수퍼에서 사온 게 전부라고 해서 같이 먹게 되었다. 닉은 두 친구와 같이 여행 중이었다. 미국에서 온 쿨한 성격의 캐롤린과 같이 뉴질랜드에서 온, 어딘가 소란스러운 느낌의 앨리스였다. 우리는 그들의 누텔라 잼으로 토스트를 먹었고 그들은 수퍼에서 사 온 컵라면을 먹었다. 서로 다녀온 여행지의 감상을 교환했고, 동전을 넣으면 2분 동안 물이 나오는 캠핑장의 샤워 시설에 대해 불평을 늘어놓았다. 닉은 정말 쉴새없이 말을 하는 청년이었다. 캐롤린과 앨리스는 그런 수다쟁이 닉을 참아줄 수 있는 친구들이었다.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나중에 사진을 보내달라며 내 메일 주소를 적어주었다. 기대하지 않았던 재밌는 인연 덕분에, 평범할 뻔 한 호픈에서의 저녁이 아주 특별해졌다. (아직까지 닉에게서 메일은 오지 않았다.)
덧글
말그대로 판타지네요.
ö는 움라우트인가요?? 독어에만 있는줄 알았는데 ㅎㅎ
어쨌든 풍경이 멋진 건 사실입니다 :)
ö는 독일어에도 있고, 북유럽 쪽에서도 쓰고, 헝가리어에도 이 모양의 알파벳이 있어요.
발음하기 힘들어요 ㅎㅎㅎ
세상의 북쪽에 있는 곳이라 그런지 시원하고 청량한 느낌이 드네요 :) 저런 나라에서 아이스크림 먹으면 참 맛있을것...같아요 ^^ㅋㅋ
아이슬란드에선 아이스크림에 초콜렛이나 캔디류, 시럽 같은 토핑물을 넣고 쉐이크처럼 섞어서 파는 곳이 많더라구요!
그냥 먹어도 맛있지만요 ㅋㅋㅋ 아 또 먹고싶네요 ㅇㅠ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