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철로> by 루얼

*본 글에는 연극의 줄거리가 담겨있습니다.

 친구 H는 연극을 참 좋아하는 아이인데, 보통 사람들이 많이 보러다니는 로맨틱 코미디 연극은 싫어한다. 그래서 나에게 가끔 '사람들이 자기가 좋아하는 연극 보러가자 그러면 정말 싫어한다' 며 불평 아닌 불평을 한다. 그나마 나는 좀 재미가 떨어지는 주제라도 별 생각없이 잘 보고, 딱히 불평도 안 하기 때문에(대신 챙겨서 보는 수준은 아니지만) H가 그런 연극 혼자 보기 싫을 때 나를 불러낸 적이 있다. 아직도 군인인 그 친구가 이번에 휴가를 나와서, 1년만에 만나게 되었다. 약속을 잡을 때 H가 말하길 보고 싶은 연극이 있다고, 근데 좀 주제가 무거운데 괜찮겠냐고 물어봐서 "너 휴가니까 니가 보고 싶은 거 보자" 라고 해서 내가 밥을 쏘고 그 친구가 연극을 쏘게 되었다. 여튼 이러한 과정(?)으로 오랜만에 연극을 보게 되었다.

 대학로예술극장에서 하는 <철로>는 영국 극작가 데이비드 헤어의 작품이 원작으로, 한국의 상황을 덧붙여 번안한 연극이다. 처음에는 철도 민영화에 대한 것인 줄로만 알았는데 프로그램을 읽어보니 대구 지하철 참사에 대한 내용도 담겨있다고 나왔다. 대구 출신의 연극 작가가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영국에 가서 영국의 철도 사고에 대해 인터뷰를 담는 것이 연극의 앞 부분이고, 그 작가가 귀국하는 시점에 대구에서 지하철 참사가 일어나는 것이 뒷 부분이다. 회전의자에 앉은 각계각층의 철도 사고 관련자들이 무대 중앙에 나와 그들의 이야기를 한다. 연극은 이 사고의 시작을 '철도 민영화' 로 보고 있다. 국가의 철도가 노선별로 나눠진 민자 회사들에 의해 관리되면서 일어나는 대형 참사와 허술한 사후 대책을 비판한다. 민영화를 통해 더욱 강조된 '비용 절감'의 측면때문에 그 사고는 더이상 단순한 사고가 아닌, 막을 수 있었던 인재가 된다. 그리고 유가족, 생존자, 정치가, 사업가- 서로 다른 이해관계들의 인터뷰에서 철도 사고를 바라보는 그들이 시각을 볼 수 있다. 유족들에게는 그들의 일생을 건 싸움이 되겠지만, 정치가와 사업가들에게는 이 또한 지나갈 소란일 뿐. 대구 지하철 참사는 이 영국의 철도 사고와 상당 부분 겹친다. 비용 절감, 안전 불감증, 사고, 그리고 허술한 대책.

 나는 '회전의자' 를 통해 등장인물을 바꾸는 연출이 마음에 들었다. 연극의 전체적인 화면이 역동적으로 보인다. 그만큼 덜 지루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처음엔 주제가 무겁다길래 지루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내용에도 어렵지 않게 몰입할 수 있었다. 

 영국에서 인터뷰를 하러 간 연극 작가는 대구 지하철 참사의 유가족이 된다. 그의 후배가 참사에 대한 내용으로 작품을 만들면서, 그에게 좀 더 인상적인 작품을 만들기 위해 그의 기억을 자극하는데 이에 분노한 작가는 자리를 박차고 나가더니 '직접 겪어보라'며 기름을 들고 와 뿌린다. (진짜 기름이다. 냄새가 훅 올라왔음) 그리고 실제 대구 지하철 참사에서 사망자들이 마지막 순간에 사랑하는 사람들에게전화를 하는 내용이 배경음으로 깔리는데... 아, 그 순간에서는 나오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사람들의 그 목소리는 언제 들어도 마음이 너무 아프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것을 꼭 연극에 넣어야만 했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나는 '감정에 호소하는 비판' 보다는 '냉철한 비판' 을 더 선호하기 때문에. 감성을 지나치게 자극하는 것 같던 그 장치가 약간은 불편하기도 했다. 




덧글

  • 레비 2012/02/28 23:54 # 답글

    대학로 연극들 참 좋아하는데 집과 너무 멀어서 잘 못가게 되더라구요 ㅠ 그건 그렇고 연극내용을 들어보니 그 친구분 취향이 독특하시네요 ! 전 아직 연극은 로맨틱코메디가 좋던데 말이죠.. :) 진짜 기름을 쓴것도 그렇지만 배경음으로 마지막에 나오는 그 전화소리가 실제 사고 당시 녹음된 것이었다면 좀 울음을 '짜내는' 용도로 쓰여진것같아서 아쉽네요.
  • 루얼 2012/02/29 01:43 #

    그 친구가 그 전에 같이 보자고 했던 연극은 '고도를 기다리며' 였죠... ㅎ_ㅎ
    저도 대학로 연극은 라이어 2탄 밖에 안 봤네요. 학교가 대학로 근처인데도 연극은 잘 안 봤네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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