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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 맨>, 2009 by 루얼

 좋아하는 영국 배우가 둘이나 나온다는 사실에 보기 시작한 영화 <싱글 맨>을, 나는 가끔 다시보곤 한다. 콜린 퍼스와 니콜라스 홀트가 정말 멋지게 나오는 것도 한 이유이고 느릿하게 흘러가는 화면들이 아름답기도 하기 때문이다. 디자이너의 명성에 맞게 톰 포드가 보여주는 영상은 그의 옷 만큼이나 아름다웠다. 휴강으로 할 일이 사라진 금요일 하루를 어떻게 보낼까 생각하면서 무심코 들어간 CGV 상영 시간표에 이 <싱글 맨> 이 보였다. 컴퓨터 화면으로만 본 걸 극장 스크린으로 보면 좋을 것 같아서 예매를 했다. 오랜만에, 혼자 영화를 보게 되었다. 

 <싱글 맨>을 상영한 5관은 좌석이 많지 않은 작은 소극장 같았다. 멀티플렉스가 아니라, 꼭 영화 감상실에 들어온 듯한 기분을 느꼈다. 왠지 이 관에서 상영하는 영화를 자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막이 밝은 화면에서는 묻혀 잘 보이지 않았지만, 워낙 자주 봤기 때문에 웬만한 대사 내용은 다 알고 있어서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이날 영화를 볼 때는 오로지 화면에 집중했다. 신기한 것은, 화면에 인물의 얼굴이 꽉 차게 나올 때 보통 그 인물의 눈에 시선이 가는데 이번엔 자꾸 입에 시선이 갔다. 그들이 말을 하며 움직이는 그 입의 모양이 왜 그렇게 눈에 들어왔는지 모르겠다. 

 <싱글 맨>에서 가장 좋아하는 화면 연출은, 조지의 감정에 따라 변하는 색 온도이다. 조지가 혼자 있을 때는 색 온도가 매우 차갑다. 짐이 죽고 난 이후 조지가 느끼는 상실감을 그의 표정 뿐만 아니라 창백한 화면의 톤으로도 확실히 느낄 수 있다. 반대로 짐, 찰리와 함께 있을 때는 색 온도가 따뜻하다. 사람들의 얼굴에 발그스름한 생기가 살아난다. 조지가 케니를 만날 때도 마찬가지이다. 단, 학교에서 케니와 마주쳤을 땐 화면은 여전히 차가운 색 온도를 보여준다. 대신 학교 밖에서 케니를 만날 때, 화면의 색 온도는 매우 따뜻했다. 케니에 대한 조지의 감정선이 바뀌었다는 걸 나타내는 게 아닐까 싶다. 어떻게 보면 단순하고 직설적인 화면 연출인데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듯 하다. 처음엔 의식하지 못했지만, 시간이 흐르고 그런 장면이 반복되면 어느새 그 차이가 다가온다. 

 영화의 원작 소설 작가가 크리스토퍼 이셔우드인데, 엔딩 크레딧을 보고 나오면서 이름이 왠지 낯익다 싶었더니- <Chirstopher and His Kind> 라는 TV영화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닥터 후> 로 유명한 맷 스미스가 크리스토퍼 이셔우드 역으로 출연했다.) 영화와 소설이 얼마나 닮아있을지 모르겠으나 그래도 이셔우드의 <싱글 맨>은 어떨지 궁금해졌다. 아예 원서로 그의 글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힘든 도전이 될테지만.




아이슬란드 섬머 판타지 - Akureyri아쿠레이리 by 루얼


 버스에 내려 제일 먼저 인포메이션 센터로 갔다. HOF라는 이름의 새로 지은 듯한 큰 건물 안의 인포센터에서 지도도 받고, 맛집 추천도 받고, 마트 위치도 확인한 다음 숙소로 향했다. 번화가를 지나 주택가에 들어서면(라고 해봤자 실제 걸은 거리는 얼마 안 된다.) 게스트하우스가 나온다. 말 그대로 가정집에서 손님을 받는, 그런 곳이었다. 인상 좋은 아주머니와 귀여운 아들이 2층에 살고 있었고 1층에는 손님용 방 3개와 주방, 화장실 1개가 있었다. 2인용 방을 예약했는데, 깔끔하고 널찍한 방에 더블베드에 화장대, 텔레비전까지 갖춘 (우리 기준으로) 완전 럭셔리한 곳이었다. 주방도 깨끗하고 조미료도 쓸 수 있었다. 화장실이 하나 뿐이라 다른 손님이 쓰고 있을 땐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는 점도 있지만, 대개 그렇듯 이용 시간이 겹치는 일은 별로 일어나지 않는다. 게다가 화장실도 자주 정리하시는 듯 해서 쓸 때마다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간만에 쓰는 Private 방에 기분이 좋아진 우리는 일단 장을 보러 갔다. 10분 정도 걸어가면 나오는 대형 쇼핑몰에 큰 마트가 있었다. 꼭 Reykjavik레이캬비의 Kriglan 같았다. 아무리 작다 해도 역시 제 2의 도시였다. 마침 고기가 50% 세일 중이길래 한 팩 사서 저녁으로 구워 먹었다. 뮈바튼Mývatn에서 사온 Geysir bread도 이때 먹었는데, 찰기가 있는 게 꼭 떡 같은 식감이었다. 
 이불을 따로 빌리지 않은 우리는 슬리핑백을 펴서 이불 삼아 덮고 잤다. 9시 반까지 푹 자고 나서 동네 구경을 나섰다. 아침 나절에는 구름이 살짝 끼어 있었다. 동네 구경 첫 시작지는 어제 들렀던 인포 센터 근처였다. 바다가 바로 옆에 있는데 물이 너무 깨끗해서 깜짝 놀랐다. 보통 내가 생각하는 해안가의 바닷물은 이러저러한 게 섞여 들어가 탁하고 냄새도 좀 나는 그런 물이었는데 아쿠레이리의 바다는 너무 맑아 바닥이 훤히 보이는 그런 물이었다. 색깔도 예쁜 초록색을 띄고 있었고 말이다. 그 바닷물에서 떠 다는 해파리들과 오리들을 구경하며 시간을 보냈다. 관광객을 실어나르는 데 쓰일 법한 배들도 물 위에서 멋진 풍경을 만들어 주었다. 아이슬란드에서는 배에 칠한 페인트 색깔 마저도 예술적으로 보인다. 그냥 배일 뿐인데. 
 해안에서 시내 쪽으로 걸어와 아쿠레이리키르캬Akureyrikirkja로 올라갔다. 레이캬비크의 할그림스키르캬Hallgrímskirkja처럼, 도시의 가장 높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지난 3월, 아쿠레이리를 찾았을 때는 캄캄한 저녁이었다. 주황빛 조명을 받으며 서 있던 아쿠레이리키르캬 대신 이번엔 파란 하늘을 배경 삼아 볼 수 있었다. 안에 들어가보려 했으나 장례식 때문에 3시 반 까지 들어갈 수 없었다. 교회 뒤로 돌아가 Votanical Garden을 찾았다. 사각형의 큰 정원에 여러가지 꽃이 심어져 있다. 각자의 색을 가감없이 뽐내는 꽃과 나무를 보며 걷자니 꼭 아이슬란드가 아닌 것 같았다. 자고로 아이슬란드는 나무 한 그루 없는 높은 산과 이끼 덮인 용암 대지가 제맛(?)인데, 화초가 가득한 이런 신선한 풍경(?)도 나쁘지 않았다. 카메라의 접사 기능을 맘껏 쓰면서 정원을 다 돌았다. 애인과 함께였으면 서로 사진 찍어주고 난리였겠지만 무뚝뚝한 경상도 남매들은 그런 거 없었다. 
 정원 구경을 마치고 다시 중심가로 내려오는 길에 아쿠레이리에서 가장 유명한 아이스크림 가게를 들렀다. 예전에 레이캬비크에서 가봤던 아이스크림 가게와 비슷한 분위기였다. 바닐라, 딸기, 초콜릿 등 기본 아이스크림 맛을 선택하고 그 위에 시럽이나 초코칩 등을 추가할 수 있었다. 또는 여러가지 토핑을 넣어 쉐이크 처럼 먹을 수도 있었다. 우리는 가장 기본인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3천원 정도 였는데 양도 많고 맛있었다. 다만 가게 밖 테이블에서 먹었더니 점점 추워졌다. 8월에 아이스크림 먹으면 몸이 으슬으슬해지는 나라, 이곳이 바로 아이슬란드였다. 
 시내 서점에서 엽서를 사고, 아쿠레이리 도서관에 들렀다. 와이파이도 쓰고, 친구들에게 엽서도 쓰기 위해서이다. 도서관 카페테리아에서 음료수를 사는데, 냉장고 문이 잠겨 있어 낑낑대자 카운터를 같이 보던 주방 아저씨가 열쇠로 문을 열어주면서 말을 걸었다. 장난끼가 다분한 분이었는데, 내가 컵에 얼음 좀 담아줄 수 없냐고 물어 보니 "얼음은 없고 불은 줄 수 있는데? I can't give you ice, but I have plenty of fire." 라며 순간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처음엔 일본인이라고 생각하셨는지 "아리가또" 라고 하시길래 "나는 한국에서 왔다." 라고 알려주니 "그럼 '아리가또' 가 한국어로 뭐야?" 라고 물어보시기도 하고, "내 동생이 한 달 전에 서울을 다녀왔지. 굉장했다고 하더라구." 라고 괜한 친근함을 보여주시기도 했다. 물론, 나는 "서울보다 아이슬란드의 도시들이 더 좋아요!!" 라고 빠순 돋는 멘트를 날렸고. 아주 짧은 대화였지만, 여행 중에 간간히 현지 사람들과 나누는 말이 참 좋다.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내다 4시 반 쯤 다시 아쿠레이리키르캬로 갔다. 헌데 이번엔 결혼식이 있어서 못 들어간다는 안내가 문에 붙어 있었다. 금요일의 교회는 여러가지 행사로 참 바쁘구나 싶었다. 결국 이번에도 아쿠레이리키르캬 안에는 들어가보지 못했다. 다음에 오게 된다면, 만사 제쳐두고 교회 안이 어떻게 생겼는지 눈으로 확인해야겠다. 우리는 일단 숙소로 돌아와 쉬다가 저녁을 먹으러 Bautinn 이라는 레스토랑에 갔다. 아이슬란드식 요리를 먹을 수 있다고 인포 센터 직원이 추천해 준 곳이었다. 요리를 시키면(3만원 후반 ~ 4만원 초반) 샐러드바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었다! 나는 양고기 수프를, 동생은 고래 고기 스테이크를 주문했다. 샐러드바는 빵, 수프, 채소 등 구색이 잘 갖춰져 있었다. 양고기 수프는 맛있었으나 생각보다 많이 기름져서 1/3은 동생에게 양보했다. 둘 다 여행을 하면서 오랜만에 제대로 된 음식을 배불리 먹을 수 있어 행복한 시간이었다. 계산은, 엄마님 신용카드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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